사건 유형의 정의: 한 번의 신체접촉에 붙는 두 가지 판단
이 글은 회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직장인을 위해 썼습니다. 피해를 신고한 쪽은 "회사가 성희롱으로 인정했으니 강제추행 고소도 받아들여지는지", 또는 "회사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했으니 고소해도 소용이 없는지"를 묻게 됩니다. 신고를 당한 쪽은 회사의 징계 결론이 형사 사건에서 그대로 쓰이는지를 걱정합니다. 이 글은 회사 조사 결론이 강제추행 형사 절차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 그리고 형사 결과가 회사 징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답합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호가 정의하는 개념입니다.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성적 요구 등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강제추행은 형법 제298조가 정한 범죄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앞의 것은 근로관계 안의 행위 규범이고, 뒤의 것은 국가 형벌권의 대상입니다. 같은 행위를 두 법이 동시에 평가할 수 있지만, 판단하는 주체와 묻는 질문이 다릅니다.
두 판단의 층위를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판단 주체: 성희롱은 사업주의 조사와 징계 절차가 1차로 판단하고, 강제추행은 수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형사법원이 판단합니다.
- 판단 대상: 성희롱은 말, 메시지, 신체접촉을 포함한 성적 언동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강제추행은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한 추행 행위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 증명의 정도: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을 요구하고, 징계의 정당성을 다투는 민사·행정 영역은 이보다 낮은 정도의 증명으로 판단됩니다.
- 결과: 성희롱 인정은 징계 같은 인사상 조치와 손해배상 문제로 이어지고, 강제추행 유죄는 형벌로 이어집니다.
성립 요건: 성희롱 인정에 필요한 것과 강제추행에 더 필요한 것
직장 내 성희롱이 성립하는 데에는 행위자의 성적 동기나 의도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였는지를 기준으로 성희롱 여부를 판단해 왔습니다. 따라서 신체접촉이 없는 발언이나 메시지만으로도 성희롱이 인정될 수 있고, 회사 조사도 대체로 이 기준에 따라 진행됩니다.
강제추행은 여기에 형법상 요건이 더해집니다.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이 있어야 하고, 그 추행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행위자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폭행·협박의 정도에 관해 대법원은 2023년 9월 21일 선고한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를 요구하던 종래 기준을 변경하였고, 신체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나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의 고지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기습적으로 신체를 만지는 경우 폭행 자체를 추행으로 보는 법리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차이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깁니다. 회사가 성희롱으로 인정한 사안이 발언이나 메시지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강제추행은 처음부터 검토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신체접촉이 있었는데도 회사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성희롱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 결론은 회사가 확보한 자료의 범위에서 내린 판단일 뿐이므로 수사 과정에서 강제추행 요건을 별도로 검토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처벌 기준: 징계와 형벌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강제추행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폭행·협박 없이 업무상 지위를 이용한 경우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이 검토되며,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반면 근로자 사이의 직장 내 성희롱 자체에는 형벌 조항이 없고,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에 따라 사업주가 조사, 피해자 보호, 행위자 징계 등의 조치를 할 의무를 집니다. 사업주가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사업주 본인이 성희롱을 한 경우에는 과태료가 문제 됩니다.
두 제재는 근거와 목적이 달라 한쪽이 다른 쪽을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해고나 정직 처분을 받았다는 사정이 형사 처벌을 면하게 하지 않으며, 형사 절차에서 벌금형을 받았다는 사정이 회사의 징계 권한을 없애지도 않습니다. 형사 양형에서 이미 받은 인사상 불이익이나 피해 회복 노력이 참작될 수 있고, 징계 수위를 정할 때 형사 결과가 참고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는 고려 요소일 뿐 서로를 구속하는 연결은 아닙니다.
절차의 흐름: 회사 조사와 형사 절차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두 절차는 동시에 진행될 수 있습니다. 형사 고소가 있다는 이유로 회사가 조사를 미루어야 한다는 법 규정은 없고,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사업주가 신고를 받거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형사 절차는 고소·신고, 수사기관 조사, 검사의 기소 여부 결정, 재판의 순서로 진행되며, 형사 절차의 일반적인 흐름과 범죄피해자 지원 제도는 법무부가 제공하는 안내 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사 조사가 형사 절차에 들어가는 방식은 결론이 아니라 자료입니다. 회사가 작성한 조사 결과보고서, 당사자와 참고인의 진술서, 행위자가 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경위서나 사과문은 증거로 제출될 수 있고, 형사법원은 그 내용과 작성 경위를 살펴 증명력을 따로 평가합니다. 피고인이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는 진술서류는 형사소송법의 전문법칙에 따라 증거능력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회사의 성희롱 인정 결론이 곧바로 유죄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반대 방향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증명책임과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되므로, 형사재판에서 성희롱 행위를 합리적 의심 없이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징계사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형사 무죄가 곧 징계 취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해당 판결을 포함한 판결서의 공개 범위와 열람 방법은 사법정보공개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응 시 확인 사항: 회사 결론을 받은 뒤 점검할 목록
회사 조사 결론을 통보받은 뒤에는 결론 자체보다 그 결론을 이끈 자료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형사 절차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출발점입니다. 아래 목록은 피해 근로자와 행위자로 지목된 근로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점검할 사항입니다.
- 결론의 근거 범위: 결론이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인지, 사실은 인정하되 성희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인지, 증거 부족을 이유로 한 것인지 확인합니다. 어느 쪽인지에 따라 형사 절차에서 갖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 행위의 분류: 문제 된 행위를 말·메시지와 신체접촉으로 나누어 정리합니다. 강제추행 검토 대상은 신체접촉이나 그에 준하는 유형력 행사가 있었던 부분에 한정됩니다.
- 제출 문서의 사본: 회사에 제출한 진술서, 경위서, 사과문의 사본을 보관합니다. 회사 진술과 수사기관 진술이 어긋나면 진술의 일관성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 원자료 보존: 메시지, 출입 기록, 일정표처럼 작성 시점이 확인되는 자료를 원본 형태로 보존합니다. 조사가 끝난 뒤에는 사내 시스템 접근 권한이 바뀔 수 있으므로 보존 시점을 미리 확인합니다.
- 피해 근로자 보호조치: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조사 기간 중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같은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피해 근로자는 회사에 이를 요청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 불복 절차의 분리: 행위자로 지목된 근로자는 징계에 대한 불복과 형사 대응을 별도로 준비합니다. 한쪽 절차의 결과를 기다린다고 다른 쪽 기한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 비밀유지와 불리한 처우: 같은 조는 조사 관여자의 비밀유지와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금지를 정하고 있으므로, 조사 내용 누설이나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이 있었는지 확인합니다.
정리하면 회사의 성희롱 판단과 강제추행 형사 판단은 서로의 결론을 대신하지 않고 자료를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회사가 성희롱을 인정했다고 강제추행이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형사 절차가 닫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느 조문이 적용될지, 회사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제출할지는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